Skip to main content

[Series 2.3] 아키텍처 카니발리제이션: 매출 데이터로는 안 보이고 브랜드 인식에서만 보이는 손실

 매출 보고서가 다시 좋게 나옵니다.

지난 분기 신제품 라인이 잘 팔렸고, 기존 라인도 안정적이고, 전체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9% 성장했습니다. 회의실은 안도하고, 다음 라인 확장 계획이 자연스럽게 발의됩니다. 분기마다 같은 흐름이 반복되고, 매년 SKU 수는 늘어나고, 매출도 늘어납니다.

3년이 지나서 누군가가 소비자 조사 결과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 브랜드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라는 질문에 답이 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한 서브브랜드를 답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서브브랜드를 답하고, 어떤 사람은 모브랜드 자체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회사 안에서도 같은 답이 나옵니다.

매출은 늘었는데, 모브랜드는 사라져 갔습니다.

이게 세 번째 패턴, 아키텍처 카니발리제이션입니다.

이 패턴이 까다로운 이유는 발견 단위 자체에 있습니다. 매출 데이터로는 카니발리제이션이 안 보입니다. SKU 하나가 더 팔리고, 다른 SKU 매출이 약간 줄어들 뿐, 전체 합계는 더 큽니다. 브랜드 인식 쪽에서 보면 풍경이 다른데, 이걸 일상에서 보는 회사가 드뭅니다. 모브랜드 의미의 명확성, 신뢰 점수, 추천 의향 같은 지표는 연 1회 브랜드 조사에서나 보고, 분기 단위로는 잊혀집니다.

측정되지 않는 손실은 의사결정에서 빠집니다. 그래서 카니발리제이션은 5년이 지나서야 발견됩니다.

이게 4-Layer 중 Layer 3을 다룬 글의 후속편 성격입니다. Series 1에서 아키텍처가 단순히 다이어그램이 아니라 의미의 위계라고 다뤘다면, 이 글에서는 그 위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봅니다.

특히 앞의 두 패턴(카테고리 함정,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을 거친 회사는 거의 자동으로 이 단계로 들어옵니다. 카테고리가 명확하지 않으니 모브랜드의 영역을 정의하지 못하고, 포지셔닝이 인플레이션 되어 있으니 새 SKU마다 다른 약속을 끼울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Cadillac Cimarron: 럭셔리 배지를 컴팩트 카에 붙였을 때 일어난 일

1982년 캐딜락이 새 모델 Cimarron을 출시했습니다.

배경은 단순했습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캐딜락의 판매가 빠르게 빠지고 있었습니다. 1978년에서 1980년 사이에 부문 판매가 39% 감소했고, BMW와 Audi 같은 유럽 럭셔리 컴팩트들이 미국 도시의 부유한 젊은 층을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캐딜락은 다급했고, 작은 럭셔리 차종이 빨리 필요했습니다.

내부 결정은 빨랐습니다. GM이 이미 가지고 있던 J-platform — Chevrolet Cavalier가 만들어지는 그 컴팩트 플랫폼 — 위에 캐딜락 배지를 붙이기로 한 겁니다. 새로 차를 설계할 시간이 없으니, 기존 Cavalier를 가죽 시트와 캐딜락 엠블럼으로 살짝 꾸며 출시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차가 출시되자 풍경은 캐딜락 입장에서 거의 악몽이었습니다. 첫 해 1982년 판매량은 26,000대 정도로, 캐딜락이 처음 예상한 50,000대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캐딜락 본 부문조차 이 차가 부끄러웠던지, 광고에서는 "Cimarron by Cadillac"이라는 표현을 쓰며 완전한 캐딜락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캐딜락 영업 사원들이 손님에게 "이 차를 캐딜락이라고 부르지 마세요"라고 정정해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도 매출이 회복되지 않았고, 1988년 마지막 해에 Cimarron은 6,454대가 판매됐습니다. 7년간 총 132,000대 정도로 단종됐습니다.

다만 숫자로 보이는 실패보다 더 큰 손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Cimarron이 캐딜락 모브랜드에 남긴 손상입니다.

캐딜락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럭셔리의 기준이었습니다. "스탠다드 오브 더 월드(Standard of the World)"라는 슬로건이 부담스럽게 들리지 않을 만큼 신뢰가 있는 브랜드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점에 길에 굴러다니는 Chevrolet Cavalier와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컴팩트 차가 캐딜락 배지를 달고 있는 풍경은, 모브랜드 캐딜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흔들었습니다.

이 손상은 Cimarron이 단종된 후에도 오래 갔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캐딜락이 유럽 럭셔리 세단들과 다시 경쟁하려 할 때마다, 소비자의 머릿속에는 Cavalier에 배지를 붙였던 그 회사라는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캐딜락이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까지는 20년 가까이 걸렸고, 일부 평가에서는 아직도 회복 중이라고 봅니다.

매출 데이터로 봤을 때 Cimarron이 입힌 손해는 7년치 미달 판매에 불과합니다. 브랜드 인식 차원에서 봤을 때 그 손해는 20년 넘게 갔습니다.

Crest: 새 SKU 하나하나는 다 맞는데, 합치면 무엇인지 모르겠는

Crest의 사례는 다른 결의 카니발리제이션입니다. Cimarron이 한 번의 잘못된 라인 확장이었다면, Crest는 수십 년에 걸친 SKU 누적입니다.

Crest는 1956년 Procter & Gamble이 출시한 치약입니다. 1960년 미국치과의사협회(ADA)의 충치 예방 인증을 처음 받은 치약이 되면서 시장 리더 자리에 올랐고, 그 후 30년 가까이 충치 예방 = Crest라는 등식을 모브랜드 의미로 다져갔습니다.

1990년대 들어 Crest는 라인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미백, 시린이, 잇몸 케어, 어린이용, 천연 성분, Whitestrips 같은 별도 제품군까지 SKU를 늘렸습니다. 각 SKU는 자체로 합리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소비자 니즈에 맞춘 라인이고, 출시할 때마다 매출이 추가됐습니다. 1990년대 후반 Crest의 SKU 수는 50개를 넘었습니다.

문제는 누적된 결과에서 드러났습니다. 1985년에 "Crest는 무엇을 가장 잘하는 치약인가?"라고 물으면 답이 거의 통일됐습니다. 충치 예방. 2000년대에는 답이 갈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백, 어떤 사람은 시린이,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모브랜드의 의미가 30년 동안 쌓아 올린 충치 예방에서 점점 흩어져 갔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Crest가 카테고리 1위 자리를 완전히 내준 건 아닙니다. 2008년 기준으로도 Crest 34.7%, Colgate 33.5%로 박빙이었습니다. 다만 모브랜드 의미의 명확성이라는 측면에서, Crest는 자기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같은 시기 Colgate는 SKU 수를 의도적으로 절제하면서 Colgate Total이라는 통합 라인으로 모브랜드 메시지를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고,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는 Colgate가 더 강한 모브랜드 자산을 가진 회사가 됐습니다.

Crest 사례가 마케팅 교과서에 자주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매출은 카니발리제이션 기간 내내 늘었습니다. 다만 모브랜드의 의미는 그 사이에 조용히 사라져 갔습니다.

왜 카니발리제이션을 막지 못하는가

누구도 일부러 모브랜드를 잠식하려고 라인을 확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막지 못할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분기 KPI의 끌어당김입니다. 라인 확장은 분기 매출을 즉시 올립니다. 새 SKU가 출시되면 그 자체로 매출이 추가되고, 분기 단위로 평가받는 임원에게 라인 확장은 가장 빠른 성과 도구입니다. 반면 라인 확장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분기 보고서에 어떤 숫자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쪽 결정은 즉시 보상받고, 다른 결정은 보상받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면 한 방향으로만 결정이 누적됩니다.

둘째, 카니발리제이션의 측정 부재입니다. 매출 데이터는 누구나 보지만, 브랜드 인식 지표를 일상에서 보는 회사는 드뭅니다. 모브랜드 의미의 명확성, 신뢰, 추천 의향 같은 지표는 연 1회 브랜드 조사에서나 잠깐 보고 잊혀집니다. 보이지 않는 손실은 의사결정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셋째, 앞 패턴의 연쇄입니다. 카테고리 함정과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을 거친 회사는 어디까지가 모브랜드의 영역인가를 정의할 기준이 없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새 라인이 모브랜드를 강화하는지 잠식하는지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면 라인은 자제되지 않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진단할 때 주의할 점

한국 시장에서 이 패턴을 진단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한국 대기업이 자주 채택하는 House of Brands 전략 — 서브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모브랜드를 의도적으로 뒤로 빼는 전략 — 은 표면적으로 카니발리제이션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가지는 본질이 다릅니다. House of Brands는 의도된 분리이고, 카니발리제이션은 의도되지 않은 잠식입니다. 진단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이게 의도된 전략인가, 아니면 누적된 결과인가"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풍경처럼 보여도, 한쪽은 설계이고 한쪽은 누수입니다.

다음 Layer로 번지는 자리

카니발리제이션이 누적되면 Layer 4(실행)이 빠르게 흩어집니다. 모브랜드와 서브브랜드의 의미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니, 캠페인이 모브랜드를 키워야 하는지 서브브랜드를 키워야 하는지 결정되지 않습니다. 매장 진열, 패키지 디자인, 광고 톤이 모두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를 매번 새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게 다음 패턴, 실행 어긋남의 자리입니다.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빠져나오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둘 다 어렵습니다.

첫째, 모브랜드 의미를 측정하는 일상 KPI를 만들어야 합니다. 분기 매출 옆에 모브랜드 인식 점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라인 확장 결정이 매출만 보지 않고 의미 비용을 함께 봅니다.

둘째, SKU를 줄이는 결정을 임원이 책임지는 구조여야 합니다. SKU를 늘리는 일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합니다. SKU를 줄이는 일은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결정이 임원의 KPI에 들어 있지 않으면, SKU는 줄지 않습니다.

캐딜락이 Cimarron 출시를 결정할 때, P&G가 Crest의 SKU를 늘려갈 때, 회의실에서 그 결정을 거부할 사람이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부하는 사람의 KPI에 거부에 대한 보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은 네 번째 패턴, 실행 어긋남입니다. 데크는 완벽한데 매장에선 다른 브랜드가 서 있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룹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