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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2.2] 포지셔닝 인플레이션: 한 줄에 모든 약속이 들어가면, 시장에는 한 글자도 도달하지 못한다

 [Series 2.2] 포지셔닝 인플레이션: 한 줄에 모든 약속이 들어가면, 시장에는 한 글자도 도달하지 못한다

새 포지셔닝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줄이 화면에 떴고, 그 한 줄에는 "혁신적인 기술로 고객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친근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임원진은 만족스럽게 끄덕였습니다. 혁신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일상도 있고, 풍요로움도 있고, 친근함도 있고, 프리미엄도 있고, 라이프스타일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부서에서 신경 쓰는 단어가 한 번씩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의실에서는 모두가 만족했지만, 매장에서는 그 한 줄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광고에 등장한 적도 없고, 등장했어도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한 줄은 회의실의 합의를 위해 만들어졌지, 시장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23년 동안 셀 수 없이 봐왔습니다. 두 번째 패턴,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입니다.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은 단순합니다. 한 줄짜리 포지셔닝 스테이트먼트 안에 너무 많은 약속이 들어가서, 그 약속들이 서로를 상쇄하다가 결국 아무 약속도 시장에 닿지 못하는 패턴입니다.

증상은 분명합니다. 회사 안에서 누구에게 물어봐도 자기 부서의 단어가 포지셔닝에 들어 있다고 답합니다. 마케팅은 "혁신"을 가리키고, 영업은 "친근함"을 가리키고, R&D는 "기술"을 가리키고, 디자인은 "프리미엄"을 가리킵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한 줄이라는 건, 모두가 자기 단어를 한 번씩 봤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시장입니다. 시장은 한 번에 한 단어만 받아들입니다. 두 단어를 동시에 던지면 평균값으로 받아들이거나 둘 다 흘립니다. 다섯 단어를 동시에 던지면, 다섯 개 다 흘립니다.

이게 Series 1의 Layer 2 글이 다뤘던 문제의 다른 면입니다. 그 글에서 보고서에서 박수받은 한 줄이 매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를 다뤘다면, 이 글에서는 그 한 줄이 왜 그렇게 길어지는가를 다룹니다. 그리고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이 보이는 회사는 자세히 보면 그 위 Layer인 카테고리에도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테고리가 흔들리니 한 줄로 답할 수 없고, 여러 가능성을 한 줄에 묶어 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Gap: 단어가 누적된 30년

Gap의 포지셔닝 표류는 거의 3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Gap은 미국 캐주얼 패션의 디폴트였습니다. "Fall into the Gap" 같은 캠페인이 보여주듯, 포지셔닝이 단순했습니다. 베이직 캐주얼. 베이직 청바지, 흰 티셔츠, 카키. 한 카테고리, 한 약속.

2000년대 들어 Gap의 포지셔닝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패스트패션이 부상하면서 베이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프리미엄 데님"을 끼워 넣었고, 다음에는 "패션 리더십"을, 다음에는 "에브리데이 라이프스타일"을, 다음에는 "어반 캐주얼"을 끼워 넣었습니다. 매년 신임 CMO가 들어올 때마다 포지셔닝 한 줄이 늘어났습니다.

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은 게 2010년 10월의 로고 변경 사건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사용된 클래식 푸른 박스 로고를 갑작스럽게 헬베티카 산세리프 로고로 바꿨고, 6일 만에 소비자 반발로 원복했습니다. 추정 손해는 1억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디자인 실패였지만, 본질은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Gap이 무엇을 약속하는 브랜드인가에 대한 답이 회사 안에 없었기 때문에, 로고를 바꿀 좌표도 없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Gap은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프리미엄으로 갔다가 다시 베이직으로 돌아오고, 트렌드를 따라가고, 헤리티지를 강조합니다. 한 줄의 약속이 매년 바뀌고 매년 늘어납니다. 그 사이 Old Navy(저가)와 Banana Republic(프리미엄)에 양쪽으로 시장이 갈렸고, Gap 본 브랜드는 그 사이의 어디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자리에 남았습니다.

회사 안의 누구에게 물어도 다른 답이 돌아온다는 사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모습 같습니다.

컬리: 단어를 잘라낸 자리에 들어온 다른 단어들

한국에선 컬리가 비슷한 패턴을 더 빠르게 보여줍니다.

컬리는 2015년 "마켓컬리"로 시작했습니다. 포지셔닝은 단순했습니다. 프리미엄 신선식품 새벽배송. 한 카테고리, 한 약속, 한 시간대(샛별배송). 그 한 줄이 매장에 도달했고, 충성 고객층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포지셔닝에 새로운 약속들이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이 끼어들었고, "큐레이션"이 끼어들었고, "안전한 식탁"이 끼어들었고, "프리미엄 마켓"이 끼어들었습니다. 브랜드명이 "마켓컬리"에서 "컬리"로 바뀐 게 그 인플레이션의 표면적 신호였습니다. "마켓"이라는 단어가 카테고리를 너무 좁힌다는 판단 때문에, 더 큰 정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단어를 잘라낸 결정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뷰티컬리가 들어왔고, 컬리페이가 들어왔습니다. 각각의 확장은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었습니다. 다만 모든 확장이 누적되면서, 컬리가 한 줄로 무엇을 약속하는가에 대한 답이 점점 모호해진 것 같습니다.

2022년 8월 컬리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2023년 1월 상장을 철회했습니다. 회사 측이 밝힌 사유는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와 투자 심리 위축이었습니다. 다만 2021년 프리IPO 당시 약 4조원으로 평가받았던 기업가치가 2023년에는 약 8천억원 수준까지 떨어진 흐름을 보면, 시장이 컬리를 어떤 카테고리로 평가해야 할지 일관된 답을 만들지 못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왜 포지셔닝은 매년 길어지는가

누구도 일부러 포지셔닝을 길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 줄은 매년 늘어날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부서의 합의를 위해 단어가 늘어납니다. 포지셔닝은 한 부서의 작업이 아닙니다. 마케팅, 영업, R&D, 디자인, 재무가 모두 그 한 줄에 자기 부서의 우선순위가 반영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날 때마다 단어 하나가 추가됩니다. 누구도 자기 부서의 단어를 빼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빼자는 말이 부서 위상의 후퇴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임원의 안전을 위해 단어가 늘어납니다. 포지셔닝 한 줄은 임원이 결재하는 문서입니다. 결재자 입장에서, 단어가 적은 한 줄은 위험합니다. "혁신"만 약속하는 회사가 왜 친근함은 약속하지 않는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어를 늘리면 그 책임이 분산됩니다. 그래서 결재 라인이 길어질수록 포지셔닝은 길어지는 게 마련입니다.

셋째, 시장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단어가 늘어납니다. 한 단어로 약속을 좁히는 일은 다른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를 때, 단어를 줄이는 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보험처럼 단어를 더 넣게 됩니다. 혁신이 안 통하면 친근함이 통할지도 모르니까. 이 보험은 안전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에 도달하는 메시지를 아예 만들지 않게 됩니다.

포지셔닝 인플레이션이 위로 번지는 자리

포지셔닝이 인플레이션 되면 Layer 3(아키텍처)이 흔들립니다. 한 줄에 모든 약속이 들어 있으면, 모브랜드가 무엇을 책임지고 서브브랜드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의 패턴, 아키텍처 카니발리제이션이 시작됩니다.

Layer 4(실행)에선 더 빠르게 균열이 나타납니다. 캠페인 카피라이터가 한 줄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매장 직원이 고객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할지 모릅니다. CRM 메시지가 어느 약속을 강조해야 할지 흔들립니다. 한 줄이 흩어지면, 그 한 줄을 매개로 작동하는 모든 실행이 함께 흩어집니다.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빠져나오는 방법은 단어를 빼는 일입니다.

포지셔닝 한 줄에서 단어를 빼는 일은 가장 정치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의 부서가 그 단어를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회사가 단어를 빼지 못하고, 한 줄은 매년 길어지기만 합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시장의 머리에 한 단어만 남는다면, 어떤 단어인가? 그 한 단어가 답이고, 나머지는 보고서에는 남을 수 있어도 포지셔닝 한 줄에는 남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글은 세 번째 패턴, 아키텍처 카니발리제이션입니다. 포지셔닝이 흔들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풍경, 라인 확장으로 매출은 늘었는데 정작 모브랜드가 사라져 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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